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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임즈 역사기획칼럼(1)] 대한제국 13년…① 짧지만 굵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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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임즈 최창수 기자] 도서출판 '정담은출판사' 탄생을 기념하면서 (6종-30회)의 역사기획칼럼을 연재하고자 한다. 역사기록에는 정사(正史)와 야사(野史)가 있다지만 이 칼럼은 단순한 사견(私見)에 불과하다는 것을 조심스레 밝히면서 - ①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 ② 우중문, 참 가련하다 ③ 신(新) 징비록 ④ 백제의 마지막 전투 백강국제해전 ⑤ 한일수교 51주년을 맞아 ⑥ 훈민정음해례본이 국보1호다 - 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내용으로 '대한제국 13년'을 준비했다. 역사상 가장 짧았던 제국이었지만 천년 신라보다 더욱 깊은 내공을 보여줬다. 열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주독립국으로 장엄히 존재하고자 했던 대한제국을 돌이켜보며 미래를 향한 역사적 귀결을 바로 세우고자 한다.
 
1. Yi Jun Peace Museum -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
 
네덜란드 행정수도 헤이그에는 아직도 한국 근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07년 네덜란드 국회의사당 비넨호프에서 전 세계 45국 대표들이 모여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다. 당시 고종황제 특사로 파견됐던 세 명의 헤이그 밀사들, 이위종, 이상설, 이준이 온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들은 의장국인 러시아와 네덜란드의 초대를 받고도 참여를 거부당하고 만다.

헤이그의 '이준열사기념관(Yi Jun Peace Museum)'에는 밀사의 울분이 담겨져 있다. '일본인들은 항상 평화를 말하지만 어찌 사람이 기관총구 앞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겠는가? 한국의 독립과 한국인의 자유가 이뤄지지 못하는 한 극동의 평화는 있을 수 없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헤이그 밀사의 좌절은 야심차게 출발한 대한제국 13년의 종말이었다.

2. 대한제국은 자주독립국이다.
 
1897년에 선포된 대한제국은 우리 역사 최초의 근대국가로써 짧지만 큰 발자취를 남겼다. 대한제국이 선포된 19세기 말은 세계열강들의 아시아 공략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였다. 아래서는 일본이 한반도를 발판으로 대륙진출의 야욕을 불태우고 있었고, 위에서는 만주 진출을 노리던 러시아가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속수무책으로 열강의 손에 넘어가고 있었으나 강대국들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자주독립과 대제국의 기치를 내세운 나라는 바로 대한제국이었다. 글쓴이가 이 글을 통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대했던 대한제국의 실체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비록 분단의 현실이지만 7천 5백만 배달겨레의 미래를 향한 역사적 귀결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다.

3. 대한제국 선포되다 - 1897년 10월 12일
 
서울 중구 소공동에는 조선 세조 때 만들어진 환구단(圜丘壇)이 있다. 이곳은 왕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신성한 곳이었다. 그로부터 4백여 년이 지난 1897년 10월 12일, 고종황제는 이곳에서 즉위식을 갖고 대한제국의 수립을 만방에 선포한다. 대한제국의 탄생은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했던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임을 천명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고종의 황제국 선포는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국제정세를 돌파하는 선언이었다. 1894년 일본은 한반도를 청일전쟁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조선에 대규모 군대를 파병한다.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 나라는 만주진출을 추진하던 러시아였다. 청일전쟁 후 일본이 요동을 점령하자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와 연합해 일본을 견제한다. 삼국간섭이었다.

4. 친일내각 청산하라.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난다. 친러시아 성향의 명성황후를 시해함으로써 일본에 불리해진 상황을 만회하려는 것이었다. 주권의 상징인 궁궐마저 유린당하자 위협을 느낀 고종은 이듬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다. 아관파천이다. 러시아 공사관은 외국 공사관 중 최대 규모로 러시아의 위상을 잘 알 수 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러시아는 일본과 가장 대립적인 관계로 일본이 조선에서 하는 행위에 가장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조선이 러시아와 손을 잡자 일본의 기세는 상대적으로 약해졌고, 고종은 이러한 안전국면을 이용해 빠르게 시국을 수습해 나갔다. 그 첫 번째가 친일내각 청산이었다. 전국에 친일관료 체포령을 내려 일본의 침략야욕을 송두리 채 뽑으려 한 것이었다.
 
5. 러시아의 이권침탈을 막아라.
 
그러나 러시아 공사관에서의 고종의 안정된 정사는 오래 가지 못하고 만다. 1896년 5월, 러시아는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이유로 일본과 손을 잡게 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정치적 우월을 인정하는 대신 일본군의 한반도 주둔을 허용하는 이른바 '로마노프-야마가타 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고종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고종이 자국 공사관에 머문 것을 이용해 광산채굴권 등 각종 이권을 끊임없이 요구했고, 미국 등 다른 나라에 이권을 넘기기까지 했다. 고종이 1년 가까이 러시아 공사관에 있다가 환궁을 결심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러시아의 이권침탈과 내정간섭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이었다. 러시아마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자 고종은 새로운 준비를 하게 된다.
 
* 최창수 한국타임즈 수도권취재본부 총괄본부장은 '한국기독교 사형폐지운동연합회 수석운영위원' '뉴스나비 논설위원' 도서출판 '정담은출판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타임즈 최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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